대한민국 람사르습지 1호이자 국내 유일 고층습원...독특한 생물지리학적 특징·희귀식물 관찰 가능

[관광레저신문=왕진화 기자] 습지(濕地)란 글자 그대로 습한 땅이다. 그래서 영어로도 ‘wetland(젖은 땅)’라 쓴다. 일시적이나 영구적으로 물로 젖어 있는 곳이 습지인 것이다. 또한 습지는 생명체의 보고서이며, 희귀동식물을 비롯한 온갖 생명체의 삶터다. 계절마다 보이는 야생동식물도 다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습지를 찾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4,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 정상 인근에 자리 잡은 용늪은 국내에서 유일한 고층습원(식물 군락이 발달한 산 위의 습지)으로, 지난 1967년 충북대 강상준 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대한민국 람사르습지 1호이자,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6월 가볼만한 곳에 선정된 ‘인제 대암산 용늪’의 주요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람사르습지란… 람사르협회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지정, 등록하여 보호하는 습지를 말한다. 독특한 생물지리학적 특정을 가진 곳이나 희귀동식물종의 서식지, 또는 물새 서식지로서의 중요성을 가진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람사르습지로 지정한다. 국내에서는 연안습지, 내륙습지, 인공습지, 썰물 때 수심이 6m 넘지 않는 바다지역 등이 선정돼 있다.
 

용늪의 모습. [사진=인제군 제공]


▲ 가기 전 알아보는 용늪의 특징
산지습지는 산에 물이 고인 곳이라면 어디든 만들어진다. 산행 중 물이 흥건한 지역을 발견했다면 그게 바로 산지습지인 것이다. 산정상이나 산허리 아무데든 상관없다. 산에 내린 빗물이 산체(山體)로 스며들어 흐르다 다시 경사가 완만한 데로 배어나오는 곳에 산지습지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특히 인제 대암산 용늪은 산정상에 위치한 만큼 기온이 낮기 때문에, 유기물의 부패가 진행되지 않아 넓은 토탄(土炭)층이 형성돼 있다. 두께 1~2m인 이곳의 토탄층은 지하수를 가득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용늪은 일찍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73년 용늪을 포함한 대암산 전체가 천연기념물 246호로 지정됐다. 1989년에는 용늪만 따로 생태계보전지역이 되었으며, 1997년에는 대한민국 최초 람사르협약 습지로 등록되었다. 람사르협약은 물새가 서식하는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1971년 이란 람사르에서 채택된 국제조약으로, 우리나라는 1997년 101번째로 람사르협약에 가입했다.

생태계보전지역인 용늪을 탐방하기 위해서는 미리 방문 신청을 해야 한다. 인제군 생태관광 홈페이지(http://sum.inje.go.kr)와 양구생태식물원 홈페이지(www.yg-eco.kr)에서 신청할 수 있다. 인제군은 방문 2주 전, 양구군은 20일 전에 신청해야 한다. 하루 탐방 허가 인원은 인제군이 150명, 양구군이 100명이다. 용늪 탐방 기간은 5월 16일~10월 31일이며, 날씨에 따라 변동 가능하니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가장 다양한 생물을 볼 수 있는 탐방 적기는 8월이다.
 

용늪을 가로지르는 생태탐방로. [사진=인제군 제공]

▲ 대암산 정상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용늪
용늪 탐방은 대암산 동쪽 인제군과 서쪽 양구군에서 각각 출발할 수 있다. 아이와 함께라면 개인 차량으로 용늪 입구까지 이동하는 인제군 인제읍 가아리 코스가 좋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용늪을 둘러보고 대암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등산로는 비교적 평탄하지만 막바지에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니, 비가 오거나 안개가 낀 날에는 주의할 것.

용늪평화생태마을에서 출발해 용늪까지 오르는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 코스는 왕복 5시간 남짓 걸린다. 올해 10월 람사르협약의 습지 도시 인증을 기다리는 용늪평화생태마을은 용늪의 생태를 미리 볼 수 있는 전시관과 펜션, 식당 등을 갖췄다.용늪에 도착하면 지역 주민 가이드의 해설로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된다. 용늪이란 이름은 ‘승천하는 용이 쉬었다 가는 곳’이란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습지보호지역을 가로지르는 탐방 데크를 사이에 두고 큰용늪과 작은용늪, 애기용늪이 있다. 융단처럼 자란 습지식물이 바람에 따라 출렁이는 습지 전체 면적은 1.06㎢에 이른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지에 용이 쉬어 갈 만한 늪이 생긴 것은 4000~5000년 전이다. 단군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고 한반도 최초의 나라를 세울 무렵에 용늪이 태어난 셈이다. 전체가 바위투성이인 대암산 정상부는 1년에 5개월이나 기온이 영하에 머물고, 안개가 자주 낀다. 이처럼 춥고 습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바위로 스며든 습기가 풍화작용을 일으켜 우묵한 지형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빗물이 고여 습지가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바위 지형에 빗물이 고였다고 곧바로 다양한 생물이 둥지를 트는 건 아니다. 용늪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너무 추워 죽은 식물이 채 썩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 이탄층이다. 이탄층이 켜켜이 쌓인 뒤에 비로소 여러 생물이 자리를 잡았는데, 특이한 지형과 기후 덕분에 끈끈이주걱과 비로용담, 삿갓사초 같은 희귀식물이 군락을 이뤘다. 산양과 삵, 하늘다람쥐 같은 멸종 위기 동물도 산다. 평균 1m, 최대 1.8m에 이르는 용늪 이탄층은 수천 년에 이르는 식물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한반도의 식생과 기후변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 가족 단위로 둘러보기 좋은 역사·과학 명소
용늪평화생태마을에서 차로 10분쯤 가면 한국DMZ평화생명동산에 닿는다. 삼팔선 넘어 휴전선 가까이 위치한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은 DMZ 일원의 생태계와 역사, 문화를 보존하고 후세에 전달하기 위한 연구·교육기관이다. 한국전쟁의 역사와 의미, 용늪을 비롯한 DMZ의 생태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이 마련되었고, 생태 체험과 민통선 현장 체험 등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인제읍을 가로지르는 소양강 변에 인제산촌민속박물관과 박인환문학관이 나란히 있다. 인제산촌민속박물관에서는 강원도 인제의 산촌 생활을 계절별로 전시한다. 각종 유물과 영상, 디오라마, 체험을 통해 산촌 사람의 생활을 생생히 알아볼 수 있다. 인제가 고향인 시인 박인환을 기념해 세운 박인환문학관은 그가 활동한 1940~1950년대 명동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관이 인상적이다.

인제산촌민속박물관을 지난 소양강은 내린천과 인북천이 합쳐진 강이다. 두 강이 만나는 자리에 조선 시대 정자인 합강정이 있다. 1676년(숙종 2)에 처음 지었다가 불에 탄 것을 1756년(영조 32)에 다시 지었다. 정자 옆에는 가뭄이나 전염병을 막기 위해 제사를 지낸 강원도 중앙단이 보인다.

원대리의 자작나무 명품숲은 자작나무 수십만 그루가 있는 순백의 세상이다. 입구 주차장부터 한 시간 남짓 임도를 걸으면 하얀 숲을 만난다. 남면 수산리에 자작나무 숲이 하나 더 있는데, 원대리 자작나무 명품숲이 더 크고 둘러보기 편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저작권자 © 관광레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